[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일상 속 여행/남미 2012. 9. 26. 09:47
페루의 티티카카 호수를 본 후 볼리비아의 티티카카(Titicaca)를 보러 출발했다. 오랜만에 현지인 없이 여행자들만 가득한 버스였다. 그런데 중간에 티티카카가 길을 끊었다. 과연 어떻게 할까?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설마 저 작은 배에…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차 한 대까지 더 싣고 가볍게 통과. 여행자들은 내려서 따로 배를 타고 티티카카를 건넜는데 만약 버스에 다 탄 채라도 저 배가 무사히 떠다닐 수 있을까?

이민국의 입국 심사도 버스 5대에 타고 있던 여행자들만 가득한 덕분인지 간단하게 통과했다. 재미있는 건 볼리비아와 페루는 1시간의 시차를 가지고 있어서 국경을 경계로 두 발을 내딛고 있으면 몸의 양 반쪽이 서로 다른 시간대에 있는 것을 경험할 수 있다.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국경을 넘어 다시 보는 티티카카다! 페루에서 볼 때보다 물이 훨씬 맑아 보인다. 티티카카가 품고 있는 꼬빠까바나(Copacabana)는 작은 마을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크다. 티티카카 관련 투어 상품을 다루는 작은 회사들도 아주 많다.

남미에서 도시 간 이동을 하다 보면 20~30시간, 심지어 40시간 넘게 버스를 타는 일이 흔한데 뿌노와 꼬빠까바나는 가까워서 휴식 없이 바로 이동하기로 했다. 배를 타고 태양의 섬(Isla Del Sol:이슬라 델 솔)에 넘어가 거기서 묵을 작정이다.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뱃시간까지 시간이 좀 남아서 식당에 들어가서 점심을 먹었다. 해발 3800 미터니 면이나 밥이 설익어서 나온다는 말을 듣긴 했는데 정말 밥이 너무 맛없다. 안 그래도 남미에서 주로 먹는 쌀은 전혀 찰기가 없는, 한국인 입엔 참 맛없는 쌀인데 설익기까지 하다니. 이곳 사람들은 평생 이런 밥을 먹는 건가? 동아시아의 밥을 먹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내 옆에 탄 브라질 친구들의 수다를 들으며 다시 티티카카를 건너기 시작했다. 스페인어로 Yes는 Si(씨)인데 포르투갈어는 Sim(씽)이다. 서로 ‘씽씽’이란 대답을 하는데 왠지 귀엽다.

햇살에 미친 듯이 반짝이는 티티카카 호수를 보면서 1시간 반쯤인가를 오니 태양의 섬에 도착. 내리자마자 섬 아이들이 잔뜩 달려와서 호객을 한다. 이런 곳에선 딱히 바가지 쓸 일이 별로 없어서 그냥 따라가도 되지만 높은 곳에 숙소를 잡기 위해 모두 거절했다. 이곳에서 은하수를 본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그래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는데 2가지를 확실히 깨달았다. 하나는 담배가 나를 죽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월드컵 예선전 때 볼리비아는 아르헨티나를 6-1, 브라질을 2-1로 격파하는 파란을 일으켰는데 왜 그런지를. 볼리비아는 고도가 높은 곳이 정말 많다. 무거운 배낭에 기타까지 멘 상태니 계단 하나를 오르기도 정말 힘들었다.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숙소를 잡고 싶었는데 무리라는 것을 깨닫고 중간보다 조금 더 올라가 숙소를 잡았다. 전망 좋다. 일본 배를 닮은 것 같네.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아, 좋다. 정말 이게 호수야 바다야.
국내 여행 중 가장 좋았던 곳은 통영에서 배를 타고 가는 소매물도인데 왠지 그곳이 떠올랐다.

이동 시간은 짧았지만, 버스를 타려고 6시 반에 일어난 탓인지 급 피로가 몰려왔다. 침대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니 5시다. 이제 정상에 올라가 석양을 보면 딱이다. 다시 이 섬을 오를 생각하니 한숨이 나오긴 했지만, 이번엔 무거운 배낭도 없고 기타도 없다.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태양의 섬엔 당나귀가 많다.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양도 있다.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이 섬에 잉카 유적이 있다고 들었는데 저 멀리 보이는 돌탑인가?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당나귀를 몰고가는 한 여인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숙소가 있는 곳 반대편에 마을이 있다. 처음에는 길이 수월했는데 조금 더 올라가니 딱히 길이 없어서 산을 타듯이 여기저기 올라갈 만한 곳을 탔더니 정말 허파가 터질 것 같았다. 거기다 바람도 심하게 불고 너무 춥다. 숙소에서도 추워서 캐나다에서 입고 다니던 옷들을 중남미에서 처음으로 꺼내 입었는데 그래도 추웠다.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정상에 쌓아 올려진 돌탑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춥고 숨은 차고 도무지 정상은 보이지 않고 곧 해는 질 테니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어느 사이에 정상에 도착했다. 다행히도 석양 전에 도착했다. 올라와 보니 내셔널 지오그래픽 로고가 박힌 텐트가 있었다. 설마 바람이 이렇게 불고 추운데 여기서 지내는 건가?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슬슬 해가 지기 시작했는데 석양보다 더 눈에 들어왔던 건 이 풍경이었다. 처음에는 구름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설산이었다. 호수와 하늘과 구름과 섬, 그리고 설산이 한꺼번에 보이는 풍경이라니. 지구 상에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이 얼마나 될까.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석양 볼 곳을 찾고 있는 걸까.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이것이 해발 4,066 미터의 태양의 섬 정상에서 보는 석양이다.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아까 그 말도 안 되는 풍경에 이제 노을까지 추가됐다. 구름, 설산, 호수, 섬, 하늘, 노을. 내 조악한 사진기와 솜씨로는 이 풍경의 반의반도 담아낼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오랫동안 잊지 못할 풍경이었다.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마음 같아선 해가 완전히 지는 것을 보고 내려가고 싶었지만, 이곳은 가로등 하나 없어서 위험할 것 같았다. 정상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는데 하트가 눈앞에 있었다.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그리고 내려가다 발견한 새끼 양. 귀엽다. 그러나 플래시를 터뜨리면..

[볼리비아 여행] 태양의 섬(Isla Del Sol)에서 바라본 티티카카(Titicaca) 호수
 
악마로 변신!

순식간에 깜깜해져 버렸는데 아까와 길이 다르다. 사람도 안 보인다. 한참을 헤매다가 주택가가 보여 성큼성큼 걸어갔다. 밖에 나와 있는 사람이 없어 집 안 창문 쪽에 있는 사람에게 항구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고 그쪽으로 계속 걸었다. 그런데 뭔가 계속 다른 곳으로 가는 기분이었다. 내가 내린 곳은 남쪽 항구였고 북쪽 항구도 있다는데 설마 거기로 가고 있는 건가? 돈을 안 가지고 왔으니 혹시 북쪽 항구에 가게 되면 사정해서 다음 날 돈 갖다 준다고 하고 거기서 머물러야 할까? 계속 안절부절 거리며 별별 생각을 다 했다.

캐나다 로키 산맥에서 길을 잃어 한밤중에 곰이 튀어나올까 봐 덜덜 떨며 1시간 넘게 걸은 적이 있는데 딱 그때 기분이다. 너무 깜깜해서 발도 몇 번 헛디뎠다. 그러나 다행히 한참을 걷자 낯익은 길이 나왔고 다행히 호스텔도 찾았다. 안도의 한숨을 돌린 뒤 주린 배를 붙잡고 근처 식당에 들어가 역시나 설익은 밥을 먹고 다시 호스텔로 돌아왔다.

별이 쏟아질 것 같다. 오늘 밤 왠지 은하수를 생애 처음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밤이다.

자정이 가까워졌으니 혹시나 은하수가 보이지 않을까 해서 담배를 한 대 물고 밖으로 나왔다. 은하수는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별들도 아까보다 줄어있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 욕설, 비방 혹은 게시글과 상관없는 내용의 댓글은 삭제 될 수 있습니다.